[아침소설] 북으로 흐르는 강 <4>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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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언제나 맑고 선명한 언어로 인간의 내면 이야기를 즐겨 들려주는 정찬주 작가가 이번에는 집요하고도 진득한 문장으로 지나간 시대의 아픔을 말해 줍니다. 소설에 담긴 비극은 분명 과거에 속한 것이지만 새로운 모습과 형태로, 아니 더욱 강고하게 현재를 지배하고 있기에 바로 오늘의 이야기 우리의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편집자]

그래도 봉옥은 돈 한번 멋있게 써보고 싶었다. 시장 통에서 참기름 집을 바지런히 한 덕에 그 땅 정도는 언제라도 살 수 있는 통장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현소의 어머니였다. 현소의 노모가 그 쓸모없는 땅을 내놓을 리가 만무했다. 현소의 노모가 자기 땅에 심어진 그 나무를 베어내지 않는 것은 봉옥의 아버지인 최 노인에 대한 원한 때문이었다. 안골마을 사람들의 저주가 오래오래 퍼부어지기를 바라는 독심으로 나무를 살려두고 있는 것이지 봉옥의 아버지를 용서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몰라볼 만큼 늙어버린 노인을 만나거나 모르는 청년들과 마주칠 때마다 봉옥은 세월의 물살을 더욱 세차게 느꼈다. 이장 일을 보았던 김 씨 역시 허리가 휜 상노인으로 변해 있었다. 김 씨는 금세 봉옥이를 알아보았다.

"이 사람, 봉옥이 아니어?"

"네, 순천 어른. 오래 뵙지 못해 죄송허그만요."

"죄송허긴. 대처 나가서 부자 되았다 허드구만. 이 마실 잘 떠났지."

김 씨는 힘이 없어 겨우 말을 뱉어내면서도 봉옥이를 우호적으로 맞이하며 뭔가를 증언하듯 눈에 빛을 발했다.

"누가 뭐시라고 혀도 난 알고 있네. 자네 아부지는 사실 우리 마실 사람들헌티 아모 해꼬지도 안했어. 현소 애비가 죽은 건 일제 때나 해방 후에나 순사 노릇을 했다고 해서 인민재판을 받아 그러크롬 된 것이여. 암."

그러나 안골마을 사람들 중에 김 씨 말고는 아무도 봉옥의 아버지 편에서 힘이 돼주려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면당위원장을 지낸 봉옥이 아버지가 저질렀던 업보는 그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는 결 인연의 고리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노망기까지 가끔 보이는 현소의 노모가 퍼붓는 저주도 끝이 없을 것이었다. 봉옥이에게는 빨갱이 자식이라는 흠구덕 말고도 화냥년이라는 욕설을 더 보탰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 앞 공터를 지나치고 있는 봉옥의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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