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하이퍼나이프'가 매력적인 캐릭터 관계성뿐만 아니라 예측불가 서사로 호평을 받고 있는 가운데, 각본을 쓴 김선희 작가의 인터뷰 전문이 공개됐다.
디즈니+의 오리지널 시리즈 '하이퍼나이프'는 과거 촉망받는 천재 의사였던 '세옥'(박은빈 분)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스승 '덕희'(설경구 분)와 재회하며 펼치는 치열한 대립을 그린 메디컬 스릴러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사제지간의 독보적인 관계성부터 극의 몰입감을 높이는 쫄깃한 전개로 입소문을 타고 정주행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에 각본을 맡은 김선희 작가가 이번 작품을 집필하게 된 계기부터 캐릭터의 탄생 과정, 숨겨진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 '하이퍼나이프'는 디즈니+ 최초의 오리지널 메디컬 스릴러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번 작품을 집필하시게 된 계기와 '하이퍼나이프'라는 제목을 어떻게 정하게 되셨는지 말씀 부탁드린다.
"평소 장르물과 혈연관계 이외의 타인들이 만나서 가까워지는 이야기를 좋아해왔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기획하게 됐고요. 공존이 불가능할 것 같은 타인들이 만나 얼마만큼 가까워질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같은 질문들을 장르물의 틀 속에 녹여보고자 했습니다. 제목은 과잉, 지나침이란 '하이퍼'의 의미가 두 캐릭터를 잘 설명한다고 생각했어요. 둘은 '지나치게'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매력적이지만, '지나침'은 항상 문제를 불러오니까요."
- '세옥'은 과거 천재 의사였지만 스승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져 섀도우 닥터가 된 인물이다. 누가 봐도 남다른 면을 지닌 캐릭터로 감정에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성격인데, 이 캐릭터를 어떻게 그리고자 하셨는지?
"세옥이를 구상할 때 떠올린 이미지는 녹아가는 아이스크림을 꼭 움켜쥔, 화난 어린 아이였습니다. 손이 끈적해져도 자기 아이스크림을 놓지 않아요. 누가 이 아이에게서 그걸 빼앗으려 하면 사나운 짐승처럼 덤빕니다. 온몸으로 난리를 쳐요. '어린애 같은 극도의 이기심'이 세옥이란 캐릭터의 원천이자 그 에너지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세옥이에겐 여러 가지 미덕이 있어요. 뇌와 수술에 삶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놀라운 '열정의 소유자'이기도 하고, 극도로 좁은 인간관계 속에서 자기 '소유'의 인간들에게 헌신하는 면도 있습니다. 자기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악을 쓰는 세옥이가 주는 쾌감도 만만치 않아요. 우리가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들을 세옥이는 다 쏟아내니까요. 이런 점들을 통해 시청자들이 드라마 세계관에서만큼은 악당인 세옥이를 잠시 용서하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를 즐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캐릭터를 구상했습니다."

- '덕희'는 '세옥'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면들을 가진 캐릭터이다. '세옥'이 감정을 폭발하는 '불' 같은 느낌을 준다면, '덕희'는 감정을 고르고 치밀한 면을 가지는 '물'같은 느낌을 준다. '덕희'라는 캐릭터를 만들어갈 때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한 부분은 무엇인지?
"덕희도 세옥이처럼 여러 방면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살아온 세월이 있기에 남들을 모방하며 사회성을 길렀고, 주류사회에 녹아들기 위한 시도들을 했을 겁니다. 적당히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던 와중 세옥이를 만나게 되죠. 세옥이를 만나기 전 그의 인생은 공허하고 고독했을 겁니다. 세옥이에겐 덕희가 있었지만, 덕희의 젊은 시절엔 스승이 없었으니까요. 세옥이는 덕희가 자신과 동류여서 열광했지만, 덕희는 세옥이에게만큼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제대로 된 선생님'이 되어주고 싶었을 겁니다. 흔히들 하는 말로 '나는 대학에 못 갔지만, 너는 가야지'라는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요? 사실 덕희는 아주 섬세하고, 수줍은 사람이에요. 오랫동안 갇혀 있던 인물이라 많이 경직되어 있죠. 거침없는 세옥이가 좋으면서도 두려웠을 겁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견고하게 쌓아왔던 벽을 부수고 막 쳐들어오니까."
- 그간 선하고 정의로운 인물을 연기해온 박은빈 배우가 '세옥' 역을 맡은 것에 대한 놀라운 반응들이 많았고 더불어 '덕희'가 가진 다층적인 면모를 설경구 배우가 섬세하게 보여주셨다. 두 배우의 캐스팅 소식을 들으셨을 때 어떠셨는지, 또한 디즈니+를 통해 공개된 '세옥'과 '덕희'를 보신 소감 역시 궁금하다.
"캐스팅 소식을 듣고는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한 화면에서 둘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어요. 결과물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았고요. 제가 머릿속에서 그렸던 세옥과 덕희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캐스팅 이후 쓰인 대본들은 두 배우가 본래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에 역으로 영향을 받아 쓰였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이번 작품에서 가장 큰 개성이자 시청자들을 과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는 애증으로 얼룩진 '세옥'과 '덕희'의 사제 관계일 것 같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만드시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지, 그리고 두 배우에게 특별히 요청하신 점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홀로 망망대해에 떠있는 부표 같던 세옥이와 덕희가 자신을 꼭 닮은 서로를 발견했을 때, 세상에서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서로뿐이란 걸 알았을 겁니다. 그 순간 나이 차도, 성별도, 서로의 지위도 상관없는 하나뿐인 친구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기에 두 인물이 서로의 목줄을 쥐고 싸우게 되었을 때, 그냥 놓아 버리고 싶지만 내 친구, 내 분신이기에 누구도 먼저 놓을 수는 없는,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팽팽하게 당겨진 관계성을 그리는 데에 중점을 뒀습니다. 극 중 세옥은 덕희에게 모든 걸 내어달라고 하고, 덕희는 정말로 모든 걸 다 내줍니다. 이런 지독함을 시청자들이 최대한 느낄 수 있게 전달하려고 했어요. 두 배우 모두 대본의 행간과 의도를 놀랍도록 정확히 이해하고 계셨기에 따로 요청한 건 없습니다."

- 예상치 못한 전개가 계속 이어진다는 점에서도 시청자들에게 흥미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하이퍼나이프'는 어떤 의도로 이야기의 변주를 주려 하셨을지, 그 전개를 통해 시청자들이 어떤 재미를 느꼈으면 하셨을지?
"세옥과 덕희는 도덕과 아주 멀찍이 떨어진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들에게 시청자들이 매력을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 끝에 찾은 답이 뇌에 대한 탐구와 열정이었어요. 의사인 그들에게서 세속적인 욕망을 완전히 걷어낸 뒤 '뇌'라고 상징된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욕을 채우고, 병적으로 이상화된 관계성을 통해 '인간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장르적인 사건들을 통해 재미있게 두 인물의 여정을 따라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대본을 썼습니다."
- 이번 작품에는 박은빈, 설경구 배우님 외에도 윤찬영, 박병은 등 개성 있는 배우들이 참여하셨다. 두 배우의 연기를 보셨을 때, 생각하셨던 캐릭터 이미지와 잘 부합한다고 느끼셨는지, 혹은 예상과 다른 색다른 매력을 발견하신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네 배우들 모두 캐릭터와 찰싹 달라붙은 것처럼 연기해 주셔서 다른 이미지를 떠올릴 틈도 없었습니다. 배우들이 해석한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컸고, 그게 너무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박은빈 배우의 껄렁한 제스처와 표정, 설경구 배우의 세옥이를 대할 때만 나오는 친구 같은 바이브, 박병은 배우의 툭툭 나오는 능청스런 코믹함, 윤찬영 배우의 순진하면서도 어수룩한 표정 등 많은 부분에서 색다른 매력을 느꼈습니다."
- 실제 의료적 디테일 또한 중요한 작품인 만큼,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으셨을 것 같다. 스토리를 구상하면서 특히 연구하신 부분이 있거나, 자문 과정에서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가 있으실지?
"자문 선생님께서 미세한 조작을 위해 맨발로 페달을 밟으신다고 하신 부분이 인상에 남았습니다. 걸리적거리는 것 하나 없이 수술실에 들어간다는 맥락이 그야말로 세옥이 캐릭터 설정에 딱 맞아떨어졌고요. 대본에 나온 수술 장면들을 전체적으로 검수해 주셨고, 현장에서도 직접 자문을 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매번 감사했습니다."

- 매 화마다 구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나 진행되는 내내 다음을 알 수 없는 엔딩에 대한 기대도 많았는데 엔딩을 구상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는 무엇이었는지, 원래 구상했던 결말과 달라진 부분도 있을지 궁금하다.
"매주 2회씩 공개되기에 두 편을 한 덩어리로 생각하고 작업했습니다. 홀수 회차에 빌드업을 하고 짝수 회차 엔딩에 한 단계를 마무리하는 방식으로요, 짝수 엔딩에서는 무조건 사건적인 반전과 감정적인 클라이맥스를 모두 가져가려 노력했습니다. 결말은 초기에 구상했던 내용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세옥과 덕희 모두, 캐릭터 변화 없이 지독하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원하는 것을 이뤄낸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가님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시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 무엇언지, 특별히 애착이 가는 이유도 궁금하다.
"덕희와 세옥의 모든 순간을 좋아하지만, 하나만 고르라면 '빗속 고백' 장면입니다. 덕희가 '그럼 너는 나한테 뭘 줄 건데?'라고 물었을 때, 세옥은 무조건 받기만 할 거라고 말합니다. 그 황당한 말에 덕희가 웃음을 터트리죠. 낯선 두 사람이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끌리는 그 순간을 두 배우가 너무도 잘 살려주셔서, 살면서 가끔씩 꺼내 보고 싶은 장면이 되었어요. 장면 자체가 너무 아름답기도 하고요."
- '하이퍼나이프'를 통해 시청자분들께 인사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이런 캐릭터와 이야기가 과연 받아들여질까, 걱정도 되고 많이 불안했었는데, 다행히 좋은 면을 봐주셔서 너무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시청자분들의 반응을 보며 저도 정말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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