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상욱 기자] 무대는 빛나는 아티스트의 공간이지만, 그 찬란한 순간을 떠받치는 숨은 그림자들이 있다. (주)메이벤의 손성수 대표는 지난 30년간 대한민국의 무대를 실질적으로 설계하고 실현해 온 장본인이다.
일반인들에게 '무대 디자이너'라는 호칭은 다소 생소하지만, 방송과 공연, 이벤트 업계의 사람들에게 그는 조용한 실력자로 통한다. 조용필 월드투어부터 나훈아 무대까지, 그의 손을 거친 무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이었다.
이번 인터뷰는 손 대표가 처음으로 허락한 공식 인터뷰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말하며 조심스레 털어놓은 그의 인생과 무대, 철학과 미래에 대해 들어보았다.

무대디자인, 감정을 설계하는 예술
공연 예술에서 무대디자인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다. 하나의 공연 세계관을 형성하고, 감정의 흐름을 공간에 녹여내는 종합예술이다. 조명, 영상, 소품, 무대 구조 등 다양한 요소를 활용해 연출 의도를 시각화하며, 아티스트의 동선과 관객의 몰입도를 고려한 공간 설계를 통해 극의 흐름을 완성한다. 손 대표는 “제 눈앞의 모든 환경이 무대가 된다”라며, “무대디자이너는 공간에 감정을 불어넣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림을 사랑하던 소년, 무대를 설계하다.
“어린 시절에는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 뒤엔 경영에도 관심이 있었죠. 그러다 군 제대 후 우연히 본 공연 하나가 계기가 됐어요. 그때 무대 디자인이란 걸 처음 알게 됐죠.”
무대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그림을 현실로 구현해 수만 명의 관객 앞에 선보이는 일. 그 복합적 예술 세계가 손 대표를 사로잡았다. “내가 그린 그림을 사람들이 현장에서 보고 감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저에겐 큰 매혹이었어요.”
무대디자인의 역사 – 공간으로 진화한 예술
무대디자인은 고대 그리스 극장에서 시작되어, 르네상스 시대에 원근법과 회전무대 등의 기술이 도입되며 본격적인 예술 영역으로 발전했다. 18~19세기에는 사실주의와 함께 전기 조명이 등장하며 무대가 점차 사실적 공간으로 변모했고, 20세기에는 표현주의, 상징주의, 미래주의 등 다양한 사조가 무대에 반영되며 실험적 공간이 확산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LED, 프로젝션, 증강현실 등 미디어 요소가 무대디자인에 통합되며, 무대는 더 이상 단순한 배경이 아닌 기술과 예술이 융합된 총체적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조용필과 나훈아, 그리고 30년의 무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그는 주저 없이 ‘나훈아’를 언급했다. “젊은 시절, 현실의 벽에 부딪혀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나훈아 선생님 무대를 준비하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죠. 연출까지 직접 하시는 분이라 쉽진 않았지만, 그만큼 배울 게 많았어요.” 또 하나의 전환점은 조용필의 월드투어였다. “조용필 선생님은 늘 새로운 걸 시도하시죠. 공연 무대에 대한 열정이 어마어마했어요. 그 열정 덕분에 저희 회사도 함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비즈니스맨이기 전에 예술가의 고민을 먼저 합니다”
“무대디자인은 늘 예술성과 현실의 경계에서 균형을 요구받습니다. 연출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그 이상의 감성과 창의성을 더해 무대를 완성해야 하죠. 쉽지 않지만 그게 디자이너의 숙명이기도 해요.” 손 대표는 공연의 요구사항을 현실적으로 해석하되, 단 한 가지라도 관객에게 ‘새로움’으로 다가갈 수 있는 지점을 찾기 위해 매 순간 고민한다고 말한다.

후배들에게 – 무대에 미쳐야 무대를 만든다.
“무대디자인은 책상 앞에서만 배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진짜 실력은 현장에서 만들어집니다. 젊을 때 가능한 한 많은 무대를 직접 경험하세요. 설치, 해체, 협업 과정에서 진짜 배움이 시작됩니다. 무엇보다 무대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 일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기 때문에, 무대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수익과 효율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무대의 완성도를 위해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예술가적 자존심도 필요합니다. 내가 만든 무대가 누군가의 인생에 남을 장면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이동형 무대와 손 대표의 비전
손 대표는 트레일러형 이동 무대를 오랜 기간 연구해 왔고, 2016년에는 해당 기술에 대한 특허도 취득했다. “현실화는 아직 못 했지만, 단시간에 설치할 수 있는 이동형 무대는 제 오랜 로망이에요. 또 언제 어디서든 공연이 가능하도록 야외 객석과 조합한 시스템도 개발 중입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쾌적한 공연을 제공하는 환경을 꼭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는 일과 삶의 균형을 놓치면서도 이 일에 대한 만족감과 사명감을 버리지 않았다. “주말이 없는 삶을 살았죠. 가족과의 시간은 부족했지만, 이 일만큼 저를 만족시키는 건 없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무대를 할 거예요.”

무대디자인의 미래, 그리고 한국의 자리
무대디자인은 단순한 세트 제작을 넘어 공연의 세계관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해석하는 예술이다. 연극, 뮤지컬, 콘서트 등 장르를 막론하고 관객과 배우 사이의 감각적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며, 기술의 발전과 함께 그 표현 방식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무대디자이너는 연출가이자 기술자, 예술가로서 공연 전체를 설계하는 핵심 창작자다.
손성수 대표는 앞으로 세계 무대에서 우리나라를 알릴 수 있는 행사를 통해 우리 무대예술의 수준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무대 뒤 숨은 공로자인 그의 이름은, 무대 위 가장 밝은 빛 뒤에서 관객들에게 최고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