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배우 김희원이 감독 데뷔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무빙'에 이어 디즈니+가 공들인 '조명가게'를 완벽하게 이끌며 호평을 얻어낸 것. 배우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감정선을 디테일하게 끌어내는 것은 기본이고 서스펜스와 호러, 휴먼 등 다양한 장르를 적절하게 섞어내 몰입도를 높인 그다. "최소한 욕은 안 먹어 다행"이라며 미소를 짓는 그가 배우뿐만 아니라 연출가로서 보여줄 또 다른 행보에 기대가 커지는 순간이다.
최근 공개된 디즈니+ 시리즈 '조명가게'(원작·극본 강풀, 연출 김희원)는 어두운 골목 끝을 밝히는 유일한 곳 조명가게에 어딘가 수상한 비밀을 가진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강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며, 배우 김희원이 첫 시리즈 연출을 맡아 기대를 모았다. 주지훈, 박보영, 김설현, 배성우, 엄태구, 이정은, 김민하, 박혁권, 김대명, 신은수 등이 열연했다. 디즈니+ 런칭 이후 공개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중 두 번째로 최다 시청을 기록한 '조명가게'는 촘촘한 서사 속 눈물과 감동을 더한 캐릭터 관계성으로 호평을 얻었다. 또 쿠키 영상에 등장한 고윤정과 박정민으로 '무빙' 시즌2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 다음은 김희원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첫 시리즈 연출을 맡았는데 소감이 어떤가?
"아직은 감독이라고 느끼지를 못한다. 배우로 한 작품 할 때와 감독으로 작품을 할 때는 아주아주 큰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리적인 시간이 엄청나게 차이가 있다. 배우로서는 작품 끝나면 시원했는데, 감독은 지금도 두근두근하고 하루에도 감정 기복이 많이 생긴다. 10월 12일에 최종 납품을 했는데, 살짝 공황이 왔다."
- 지금은 어떤가?
"지금도 좀 떨린다. 인터뷰도 배우로 할 때는 제 연기니까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는데, 지금은 말조심해야 할 것 같고 마음이 좀 다르다."
- 감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작가님이 일단 제안을 하셨고 저는 "제가 한 것도 없는데 왜 저게 제안을 하냐"라고 질문했다. 저는 '무빙'에서 초능력이 없었다. 애들을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목숨 걸고 싸울 일이 없다. 그래서 이 사람의 신념이나 존재감을 이뤄야지만 목숨 걸고 싸울 수 있다 싶었고, 작가님이 설득됐다면서 대본을 바꿔주셨다. 이건 제 추측인데, 이런 대화가 저를 연출자로 생각하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겉으로는 "연기 잘하시잖아요" 이렇게만 얘기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에게 제안할 일이 없지 않겠나. 제가 작품을 볼 때 제 캐릭터도 생각하지만 전체를 많이 생각하고 분석하는 배우라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모든 것을 아울러야 하는 것이 감독의 몫인데 실제로 해보니 어땠나?
"제가 평상시에 준비를 하고 있었고,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하면서 깜짝 놀랐다. 4화 마지막 롱테이크 버스 사고신 등 모든 장면을 장난감을 사서 해봤다. "이게 맞아, 이렇게 하면 재미있을 거야"라면서 구상을 했는데, 그게 화면으로 옮겨졌다. 그 순간 누가 도와주는 것 같은 신이 있더라."
- 4부 롱테이크 신 같은 경우 다들 엄청 좋아하는 반응이었다. 커뮤니티에선 다른 김희원 감독인 줄 알았다고 놀라 하기도 했다. 이런 반응도 많이 찾아보나?
"오픈톡이라는 걸 처음 봤다. 있는 줄도 몰랐는데 보니까 칭찬이 많아서 뿌듯하더라. 욕이 많았으면 한 번만 보고 안 봤을 텐데 매일 본다.(웃음) '연출 지렸다'라는 건 기억에 확 남는다."
- 평소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했는데 그 기간은 얼마 정도인가?
"학교 다닐 때 연출 전공을 했다. 그런데 누가 시켜줘야 하지 않나. 그래서 배우를 먼저 시작했고, 자꾸 배우로 캐스팅이 되니까 배우를 계속한 거다. 연출은 틈틈이 계속 공부했다. 막상 시작할 때는 카메라가 어떻고, 조명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걸 어떻게 알겠나. 프리하는 기간 동안 스태프들과 계속 공부를 많이 했다. 소통을 많이 했던 것 같다."
- 배경을 2018년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골목길 디자인 때문이다. 사후 세계의 골목길을 어떻게 하면 판타지도 아니고, 현실인데 현실 아닌 것 같은 지점을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현재가 아닌 것처럼 보여줘야겠다 싶어서 살짝 과거로 갔다."
- 배성우 배우를 형사 캐릭터로 캐스팅했다. 음주운전 물의로 인해 대중의 시선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 캐스팅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제가 이번에 캐스팅 회의를 처음 해봤다. 너무나 많은 분이 앉아계셨다. 칠판에 대한민국의 웬만한 배우는 다 쓰여 있더라. 저마다 한마디씩 이 배우는 어떻고 저 배우는 어떻다 여러 의견을 낸다. '나도 저렇게 평가를 엄청 받고 캐스팅이 됐겠구나' 싶었다. 배성우 씨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결론은 객관적으로 작품만 생각 하자였고, 지금과 같은 결론이 났다. 저는 배성우 씨와 되게 친하다. 그래서 '친하니까 한거냐'라고 생각하게 될 거다. 저도 모든 예상을 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작품만 생각해서 캐스팅했다. 여기까지가 과정이고, 개인적인 의견은 이 친구가 후회를 정말 많이 했다. 제가 옆에서 볼 때 저도 너무 속상하더라. 그래서 욕도 많이 했다. "한 번만 더 그러면 다신 안 본다"는 얘기도 했다. 한번은 술자리에서 술을 안 마셔서 운전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몰래 동영상을 찍은 거다. 그래서 스스로 지구대에 가서 직접 불고 왔다고 하더라. "잘했다. 평생 그렇게 살아라"라고 했더니 "그러겠다"라고 하더라. 그 친구도 평생 짐으로 남아있을 거다. 연기만 30년을 했는데 다른 직업을 할 수도 없다.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이다. 작품 회의를 할 땐 이런 얘기는 못 한다. 왜냐면 이렇게 큰 작품에 친하다는 이유로 '이 사람이 후회를 하고 있다'라며 기회를 주는 건 말이 안 된다. 한 두 푼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에 대한 것은 없었다. 캐스팅됐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되게 많이 반성하고 있었다. 이런 사연이다."
- 굉장히 어두운 골목에 있는 조명가게 이미지가 드라마의 주제와 이어진다. 특별히 어둠을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려고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빛이 살려면 어둠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기술적인 부분이 많이 적용됐다. 저는 그것보다는 개개인에게 빛이 있다고 본다. 서울에 천만이 살면 천만 가지 색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전구를 엄청 많이 달아야겠다 싶었다. 이 모든 사람이 다 하나의 빛이고, 죽으면 그 빛이 꺼진다는 상상으로 했다. 전구를 가득 채우고 싶었는데 화재의 위험이 있더라. 천장에 전구를 정말 많이 달았는데, 켜더니 한겨울인데도 온도가 너무 높아져서 불이 날 것 같고 땀이 뻘뻘 났다. 최대한 많이 빼고, 조명을 흐리게 켰다. 5%밖에 안 켠 거다. 임상 체험하신 분들이 어두운 터널을 가다 빛을 봤다고 하는데, 그 정도는 되어야 하니까 밝은 빛이 나올 때는 순간적으로 확 올렸다가 내렸다 하면서 빛을 조절했다."
- 강풀 작가와 배우 대 작가로 일할 때와 감독 대 작가로 일했을 때 차이가 있었나?
"배우로 일할 땐 재미있게 하려고 의견을 내려고 해도 내 역할 좋게 하려고 그러는 거라는 시선이 있어서 강력하게 얘기를 못 한다. 제 의견은 이렇다 정도만 하는데, 감독으로 얘기를 할 때는 '된다, 안 된다' 하면서 양보할 건 양보하는 과정이 더 치열하다."
- 배우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입장도 많이 공감되고 그래서 소통도 많이 했을 것 같다. 감독의 입장에서 배우 경험이 어떤 식으로 작용이 됐나?
"제가 배우를 한 30년 했는데 지금도 제 연기에 만족을 못 한다. 촬영 끝나면 '내가 잘했나, 잘못했나' 생각이 든다. 오늘 너무 좋았다고 하는데 사실 그것에 대한 믿음이 생길 수가 없다. 집에 갈 때마다 마음이 굉장히 허전하다. 아마 우리 배우들도 다 그럴 거라는 생각 때문에 일부러 전화해서 "제일 잘했다"라고 해준다. 이러면 자기만 잘한 줄 안다.(웃음) 배우들이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전화했는데 항상 그랬던 것 같다. 안정적인 상태에서 연기하는 것과 그냥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멍석을 깔아줬을 때 억지로 등 떠밀리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고 하고 싶어서 내꺼다 하면서 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소통, 대화를 많이 했다."
- 김설현 배우가 인터뷰에서 감독님이 "3초 있다가 말해라, 15도 각도로 고개를 들어라"라는 식으로 굉장히 디테일하게 지시를 했다고 하더라.
"이게 오해가 생기면 안 되는데, 이정은 배우에게는 딸에게 전구를 무조건 주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신은수 배우에겐 "무조건 받으면 안 된다"라고만 했다. 이 두 가지만 하고 다른 건 다 편하게 하라고 했다. 하지만 설현 배우는 귀신으로 서스펜스가 보였다가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정형화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세 발자국 걸어가서 고개를 이렇게 들라고는 안 했다. 그건 불편해서 연기를 못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그런 뉘앙스를 지켜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디테일하게 말했을 뿐인데, 괜히 배우를 로봇 만든 거 아니냐는 오해로 보일까 싶더라."
- 쿠키 영상이 화제가 많이 됐다.
"쿠키 영상은 마지막 촬영 끝나기 한 일주일 전에 작가님이 대본을 주시면서 찍어달라고 했다. 쿠키 영상에 대해서는 진짜 대화가 없었다. 제가 본편 찍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그냥 대본 받아서 장소도 급하게 구했다. 제가 '무빙'에 출연했기 때문에 영탁이 시간 멈춘 거라는 걸 알아서 그것에 집중해서 찍었다. 재미있게 찍었는데 시즌2의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 박정민 배우가 영탁 역으로 출연했는데, 캐스팅은 미리 정해져 있던 건가?
"그것도 일주일 전에 쿠키를 찍어야 하니까 갑자기 캐스팅하자고 그러시더라. 작가님이 박정민 배우가 좋다고 그러시더라. 저는 '조명가게' 감독이라 '무빙'은 전혀 몰랐다. '무빙'은 작가님이 알아서 할 거라 저는 전혀 모른다."
- '조명가게'가 '무빙'과 연결된다는 것을 의식하며 연출한 것도 있나?
"알고 있어서 의식은 했다. 그런데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작가님께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물어보니까 작가님이 "아직 나도 안 써서 몰라"라고 하더라. 당시에는 한 글자도 안 썼다고 하더라. "만화와 똑같냐"고 했더니 "안 똑같다"라고 하셔서 "알았다"라고 한 정도다."
- 웹툰과 내용, 전개 방식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있다. 이미지가 나와 있는 상태에서 고민이 많았다고 했는데, 연출자로서 어떤 시선을 담으려고 했나?
"곳곳에 많다. 연출의 영역과 작가의 영역에 대해 생각을 아주 많이 했다. 책이 너무 좋고 재미있는데, 이걸 화면으로 옮겼을 때 재미가 다르다. '다급하게 병원에 갔다'라고 했을 때 병원과 '갔다'는 그냥 찍으면 되지만 '다급하다'는 생각이 다 다르다. 다급하다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모든 사람이 다를 거다. 작가님이 다급하다고 쓴 건 작가님의 영역이고 다급하다를 어떤 뉘앙스로 표현하느냐는 연출의 영역이다. 그런 대본의 모든 단어를 제 가치관으로 해석한거다. 대본엔 '어두운 골목길 끝에 조명가게만이 밝은 빛이다'라고 쓰여 있다. 각자 생각하는 어두운 골목길이 있을 텐데 저에는 '조명가게'의 어두운 골목길과 빛이다. 현장에서 찍을 때 생활 대사나 헤어지기 전 울면서 말하는 것 대부분 다 옮기기는 힘들다. 순간적으로 연기하면서 나오는 것을 현장에서 조율하고 구상을 바꾼 것도 있다. 작가님께 맨날 찾아가서 대본하고 다르다는 걸 한참 얘기한다. 작가님은 "안 된다"하고 나는 "된다."라고 하는 것이 아주 많았다."
- 연출하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나? 또 연출 제안이 들어오면 할 의향이 있나?
"제가 생각한 대로 찍었고 그렇게 봐주시는 것이 되게 짜릿하더라. 희열도 느꼈다. 초반에는 헷갈린다는 분도 많다. 그것도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런 것이 어떻게 보면 사람의 정신세계와 비슷한 것 같다. 4부에는 좀 밝혀지고 5부에는 그 이유가 나와서 슬프겠다, 이렇게 예상을 했는데 그렇게 봐주시는 것이 저는 기뻤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많은 분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라면 연출, 배우 다 좋다."
- 시즌2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우선 잘 돼야 하는 건데, 제안을 주신다면 당연히 해야 하지 않을까. 저는 이걸 하면서 창피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제일 컸는데, 그래도 재미있어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진짜 다행이다. 배우들과도 다 친한데 만약 잘 안된다면 내가 창피해서 배우들 얼굴을 어떻게 보나 걱정이 많았다. 다른 감독님들에겐 영역 침범이라 "배우나 하지 뭘 하겠다고" 이럴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 최소한 욕 안 먹을 정도로는 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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