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뉴스24 이정일 기자] 이쯤 되면 대한민국 행정부처 가운데 가장 긴 이름이 될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정보통신인공지능부(13자). 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9자)에 인공지능 정책을 추가한 조직이다. 거창한 이름만큼이나 역할은 방대하다. 과학기술, 정보통신, 그리고 인공지능까지. 최민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 발의한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핵심은 ‘AI 컨트롤타워’를 두는 것이다. AI 정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장관이 부총리를 겸하도록 했다.
저 이름과 기능 그대로 국회를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중도 하차하거나, 다른 형태의 조직이 떠오를 수 있다. 인공지능부? 아니면 인공지능정보통신부? 어쨌든 AI 컨트롤타워는 더 늦출 수 없는 대한민국의 과제다. 관건은 속도와 방향이다.
그렇다면 속도는 어떤가. 말할 것도 없이, 악몽 같은 비상계엄이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가뜩이나 지지부진했던 AI 거버넌스 논의는 멈춰 섰고, AI 서울정상회의(2024년 5월)와 국가AI위원회 출범(2024년 9월)에 따른 후속 조치는 흐지부지됐다. ‘2027년까지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구호도 쏙 들어갔다. 탄핵 정국은 가까스로 마무리됐지만 그동안 잃어버린 시간은 뼈아프다. 조기 대선으로 차기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적어도 반년 이상을 날려버린 꼴이다.
그러는 사이 세상은 천지개벽했다. 중국은 딥시크를 내놨고(2025년 1월20일) AI 패권을 자신하던 미국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실리콘밸리의 구루인 마크 앤드리슨은 “미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해 AI 노력을 가속화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이 그동안 빨랐지만 더 빨라야 한다는 주문이다. 미국의 질주와 중국의 맹추격, 그 사이에 멈춰선 한국.
최근 공개된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의 ‘AI 인덱스 보고서 2025’ 보고서는 더욱 신랄하다. 한국의 AI 민간 투자는 13억3000만달러로 전년(13억9000만달러)보다 줄었다. 투자 규모 순위는 9위에서 11위로 떨어졌다. 겨우 두 단계가 아니다. 인공지능 기술은 선형(Linear)이 아니라 지수 함수(Exponential)에 가깝다. 경쟁에서 한번 밀리면 그만큼 추격하기가 어려워진다. AI 격전장에서 속도는 곧 생존이다.
그렇다면 방향은 어떤가. 국가 AI 전략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지는 미·중 AI 패권 싸움에 힌트가 있다. 중국 딥시크가 나왔을 때 뉴욕타임즈는 ‘스푸트니크 모멘트(순간)’이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1957년 10월4일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한 충격을 빗댄 것이다.
그 충격의 배경을 뉴욕타임스는 “중국의 방대한 데이터와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국가 주도 전략이 ‘스푸트니크 모멘트’를 견인했다는 얘기다. 반면에 미국은 AI 정책이 부처간 조율로 이뤄진다. 상무부, 에너지부, 국방부의 분산된 정책은 AI 인프라 구축을 광범위하게 작동시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부처간 이견으로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방향을 택해야 할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에 흩어져 있는 AI 정책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막대한 자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술력이 뛰어나지도 않으며, 인재가 모자란 데다, 정치적 격랑으로 반년 이상을 허비한 우리에게 남은 카드는 별로 없다.
민간 산업을 강력하게 지원하고 일관되게 정부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컨트롤러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흑묘든 백묘든, 조직명이 몇자든 상관없다. 우리는 이미 많이 늦었고 충분히 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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