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두 남자가 있다. 사기와 음주운전으로 추락한 연예인 신동엽과 순박하고 여린 초짜 사채업자 정상훈. '웃픈 상황'에 놓인 이들이 대림동에서 만났다. 생존을 위해 만난 두 남자의 해프닝은 따뜻한 인간미가 녹아있고, 허를 찌르는 반전 개그가 있다. 신동엽과 정상훈의 맛깔스러운 연기는 '빅포레스트'를 완성 시키는 최고의 한수다.
tvN 불금시리즈 '빅포레스트'는 서울 대림동을 배경으로 폭망한 연예인 신동엽과 짠내 폭발 사채업자 정상훈, 조선족 싱글맘 임청아가 좌충우돌하며 펼쳐는 이야기를 담은 블랙코미디다.
드라마의 시작은 신동엽이 열었다. 사업 실패 후 음주운전 적발까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방송가에서 퇴출된 왕년의 국민MC 신동엽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대림동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욕조에서 익사를 시도하던 동엽은 자신도 모르게 발버둥을 쳤다. "비록 삶은 실패했지만 죽음마저 실패할 수 없다"라며 다시 한 번 눈을 감지만, 죽음마저 그의 뜻대로 되진 않는다. 그 순간 사채업자들이 들이닥쳐 "감히 누구 마음대로 죽니"라며 그를 옥죈다. 결국 그는 사채업자 사무실에서 만난 조선족 채옥(장소연 분)과 사기결혼까지 감행하며 바닥으로 치닫고 만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과 양심 때문에 거절하려던 동엽은 땡전 한 푼 없는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며 채옥의 손을 잡지만 정작 채옥이 식장에 나타나지 않아 '결혼 한탕 작전'은 수포로 돌아간다. 지금의 그에겐 돈도, 희망도 없어보인다.
정상훈은 "우리 아버지는 은행원입니다. 친절하고 똑똑한 우리 아버지는 은행 직원들에게 인기도 짱입니다. 고객들도 아빠를 좋아해서 항상 아빠를 찾는다고 합니다"라는 딸의 내레이션으로 소개됐다. 딸에게 자신의 직업을 은행원이라 속이고 있는 그의 실상은 동엽이 돈을 빌린 대출회사 '아보카도금융'의 직원이다. 채무자에게 인질이 되는, 도통 사채업자와 어울리지 않는 그지만 생계를 위해 꾸역꾸역 회사를 다닌다. 소심하고 순박한 성격의 상훈에게 채무자를 독촉하는 일은 무엇보다 괴로운 업무. 팀 동료들과 동행하며 어깨 너머로 추심 기술을 배워보지만, 소위 'VIP(베리 임파서블 퍼슨)', 매우 난감한 막장 인생들의 돈을 회수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게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두 남자의 조우는 '짠내 시너지'가 폭발했다.
동엽은 상훈에게 생긴 첫 담당 고객. 우여곡절 끝에 동엽의 집 안으로 들어간 두 남자는 "서로 잘 부탁한다"며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상훈은 바지도 벗어보고, 어설픈 협박도 시도하지만 동엽에게 통할리가 없다. 이자를 받으러 갔다가 되려 맥주를 삥 뜯기고 온 상훈은 제갈부장(정문성 분)의 냉철한 한마디에 상처를 받고 만취한 채 동엽을 찾아가 모진 말을 퍼붓는다. 그러나 동엽이 자살 기도를 할까 하는 상훈의 걱정과 달리, 동엽은 그저 만취해 숙면을 취하고 있다. 뻔하지만 유쾌한 뒤통수다.
답답한 상황에 놓인 두 사람이, 생존을 위해 '길'을 찾아 나서면서 본격 웃음과 공감이 시작됐다.
동엽은 상훈의 제안으로 빚 탕감과 이미지 쇄신을 위해 대림고등학교 '관계 개선 대화법' 방과 후 수업으로 재능기부에 나서게 됐다. 문제적 톱스타와 문제적 아이들의 만남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파란만장 사건들 속에서 동엽은 아무도 예상 못한 참교육 활약을 펼치게 된 것. 건물 난간에 매달린 학생을 구하고, 실연에 슬퍼하는 학생에게 조언을 해고, 흡연을 권하지만 "담배맛 떨어지게" 하는, 엉뚱하지만 아이들과 소통하려는 동엽의 모습은 따뜻한 공감과 웃음을 동시에 안겼다.
정상훈도 굴욕의 나날 속에서도 자신만의 추심 기술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상훈은 이자를 받으러 갔다 허리가 아픈 채무자가 일을 할 수 있도록 안마해주고, 피곤에 절은 택시 기사 채무자를 대신해 운전을 대신하는 등 '채무자 맞춤형' 추심 활동을 이어갔다. "호구 잡힌 것 아니냐"는 부장의 쓴소리를 들었지만, 상훈의 진정성에 이자를 내러온 채무자의 모습은 상훈의 진심이 세상과 통한 순간을 그려내며 묘한 감동을 전했다.
이처럼 '빅 포레스트'는 조선족이 어울려사는 서울의 '차이나타운' 대림이라는 동네를 배경으로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서울이지만 이방인의 동네에 가까운 대림이라는 공간은, 막막하고 외로운 처지에 놓인 두 남자의 삶과 묘하게 닮아있다. 그 위에서 펼쳐지는 동엽과 상훈의 좌절과 고군분투기는 웃음 코드는 물론 연민, 짠한 공감까지 버무러지며 시선을 붙든다.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답게, 허를 찌르는 반전과 깨알 개그는 극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신동엽의 '섹드립'을 활용한 원초적인 웃음도 있지만, 자살 해프닝 속 떨어질 집값을 걱정하는 집주인이나, "학생한테 맞으니까 교사죠. 임용고시도 맷집을 봐야한다"고 신동엽이 떨어진 교권을 비꼬는 장면처럼 현 사회를 풍자한 대사들도 녹아있다.
'빅포레스트'의 짜임새 있는 대본을 완성하는 건 신동엽과 정상훈이다.
첫 정극에 도전한 신동엽은, 캐릭터 그 자체만으로 '빅포레트'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잘나가던' 방송인이었던 그가 실제로 출연했던 프로그램이 삽입되고, 김건모 이영자 김구라 이상민 등 친분 있는 연예인들을 언급하는 모습이 웃음을 안기는 동시에 신동엽의 씁쓸한 현재를 대비 시키며 몰입도를 더욱 높인다. 바지 위에 민망한 팬티를 입고, 구급 대원의 인공 호흡에 혀를 넣는 등 신동엽이라 가능한 '섹드립'도 빼놓을 수 없는 웃음 포인트. 물론 눈물과 웃음을 오가는 맛깔스러운 연기는 그 어디 하나 어색함 없다.
정상훈은 순수하고 선량한 싱글 대디부터 웃음 넘치는 초보 사채업자까지, 내공 있는 연기로 펼쳐냈다. 채무자들에게 되려 당하거나, 무료로 받은 전집에 '백설공주'만 빠져있다고 진상을 부리는 모습까지, 인간미 넘치는 활약으로 짠한(?) 웃음을 선사한다. 아직 본격 스토리는 펼쳐지지 않았지만, '백설공주'로 상훈과 인연을 맺게 되는 조선족 싱글맘 최희서의 이야기도 궁금증을 모으는 대목.
연기력 만렙 배우들도 곳곳에 포진됐다. 1회에 특별출연해 신동엽과 사기 커플로 코믹 연기 호흡을 보여준 장소연을 비롯해 따뜻한 인생철학을 가진 중국집 사장 김용 역의 전국환, 상대의 혼을 쏙 빼놓는 독특한 대화법을 지닌 제갈부장 역의 정문성, 초짜 직원 상훈을 살뜰히 챙기는 황문식 과장 역의 김민상, 연기 재능을 살려 돈을 받아내는 추심수 역 정순원, 미모의 반전 캐릭터 유주은, 대림고의 신스틸러 고수희와 이준혁, 문제아 학생 유선호 등도 드라마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드라마는 이제 2회가 방영됐다. "현실을 직시하지 말라. 헛꿈 꾸지 말라"며 가슴을 후벼파는 아픈 이야기로 시작됐지만, "느리게 보면 더 자세히 볼 수 있다"는 메시지로 삶의 용기를 다시금 얻는다. 신동엽과 정상훈, 그리고 최희서의 대림동 고군분투기가, 또 '빅포레스트'가 앞으로 완성해나갈 큰 그림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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