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느긋하고 여유있게 살고 싶어요."
사랑에 대한 간절함과 어려움에 눈물을 흘리며 설경구가 송윤아와의 세기의 결혼에 골인한지 이제 한달. 참깨 냄새가 폴폴 풍길 것 같은 새신랑 설경구는 예전보다 한결 부드럽고 여유있어진 모습이다. 몸 전체에서 풍겨나오는 여유와 자신감,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함이 감춰지지 않는다.
특유의 섬광같은 눈빛도 호탕한 웃음에 감춰지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도 한다. 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설경구의 모습이다. 자신의 변화에 대해 설경구도 인정한다. 그렇다면 변화의 뒤에는 당연히 행복한 결혼 생활이 있지 않을까. 지레 짐작한 것과 달리 설경구의 입에서는 영화 현장에서 만난 두 사람 덕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13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최초의 한국형 재난 영화 '해운대'는 설경구의 인생 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쉽게 말하는 대형 상업영화에의 도전이나, 장르의 변화같은 말이 아니다. 연기 철학에 대한 배우로서의 지론을 바꿔 놓은 터닝 포인트가 바로 '해운대'다.
최초의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장르에 걸맞게 영화 현장에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난관이 도사렸다.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소품은 예상과 달리 파손되기도 했고, 주연배우들을 괴롭힌 사투리 연기도 영화의 큰 난제였다.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았던 영화 현장에서 총지휘를 맡은 윤제균 감독은 한번도 낯을 찡그리지 않았다고.
"처음에는 이 사람이 바보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당연히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인데도, 실수한 스태프의 모습을 보며 웃는 윤제균 감독이 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죠. 하지만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좋은 에너지를 주는 윤 감독에게 점점 동화되더라고요."
윤제귬 감독과 함께 설경구에게 많은 변화를 준 인물은 극중 사랑하는 연인으로 등장하는 하지원이었다. 힘들수록 스스로를 '업'시키는 하지원만의 긍정적인 힘을 보며 느낀 점이 많았노라고 설경구는 털어 놓는다.
"(하)지원이랑 윤제균 감독은 여러 작품을 함께 했죠. 이번에 보니 두 사람 코드가 잘 맞아서 그렇게 인연이 깊었구나 하는 걸 알겠더라고요. 저는 연기를 할때 스스로를 다운시키는 편이었거든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도 좀 불편하게 만들고. '박하사탕' 때 그렇게 연기해서 재미를 좀 봤더니 그게 10년 동안 습관으로 굳어진거에요."
하지원과 윤제균 감독의 긍정의 힘은 설경구에게 편안하면서도 낙천적으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고생한만큼 '해운대'에 거는 설경구의 기대는 크다. 하지만 '트랜스포머 2'의 위용이 부담스럽고 무서울 정도라고 솔직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는 2억 달러짜리 영화에 경쟁할 수 있는 한국형 재난 영화의 힘은 이야기와 감정 뿐이라고 강조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와 우리 이웃이 예기치 않은 재난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통해 물량보다는 인간미로 승부하고 싶다고 한다.
'해운대'의 촬영을 마친 설경구는 부검의 역으로 출연 중인 영화 '용서는 없다'의 촬영 중이다. 현장에서 처음 만난 한혜진과 즐겁게 친분을 쌓아가고 있으며 류승범과는 '사생결단'과 다른 또 다른 '날것'의 앙상블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전에는 작품을 촬영하면서도 차기작이 결정되지 않으면 불안했어요. 차기작이 꼭 있어야만 마음이 편했죠. 하지만 이제는 좀 쉬어가며 여유있게 연기하고 싶어요. 주위 사람들에게, 후배들에게 기분 좋은 에너지를 전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런 마음이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웃음)."
"이제 조금 느긋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설경구의 여유로운 변화가 새 영화 '해운대'와 '용서는 없다'에서 어떻게 완성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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