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브라질-미국 전지훈련이 막을 내렸다.
약 20일간 진행된 이번 전지훈련. 비용은 10억원 정도 들었다. 긴 시간에 많은 돈을 지출한 이번 전지훈련에서 홍명보호가 얻은 성과(?)는 극단적으로 말해 단 하나다. K리거의 '초토화'다. K리거들이 초토화되니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않았던 유럽파 등 해외파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더욱 올라갔다.
열심히 전지훈련에 참가하며 땀을 흘렸던 K리거들은 3차례의 평가전을 통해 하락세와 함께 불신을 가져다 줬고,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않았던 유럽파들은 상승세와 함께 굳건한 믿음으로 돌아왔다.
즉, K리거들은 홍명보호에서 경기를 뛰면 뛸수록 손해를 본 것이다. 한 예로 이번 전지훈련을 통해 김신욱은 다시 '헤딩 기계'로 전락한 듯한 느낌이다. 지난해 말 플랜A로까지 거론되며 대표팀의 핵심 공격수로 부각됐던 김신욱은 이번 전지훈련이 끝나자 다시 플랜B로 가치가 하락했다. 열심히 뛴 김신욱은 제자리, 아니 하락세를 타야만 했다.
반면 아스널에서 왓포드로 임대 이적한 박주영의 가치가 더욱 올라가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김신욱을 향한 기대보다 아스널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박주영이 2부리그(챔피언십) 왓포드에서 정착해 컨디션과 감각을 끌어올려 대표팀에 합류할 것이란 기대감이 더욱 커진 것이다.
K리거 위주의 국내파 선수들. 분명 유럽파와 수준 차이가 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축구의 대륙 유럽으로 건너간 선수들이다. 유럽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의 능력과 경쟁력은 당연히 인정받아야 한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만나 싸워본 경험이 유럽파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유럽파 선수들이 대표팀의 중심이 돼야 하고 그래야 월드컵 본선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홍명보호가 3차례 평가전에서 보여준 졸전이 오직 K리거들만의 문제로 인식돼서는 안 된다. 또 K리거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서도 안 된다. K리거들이 유럽파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정도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른 문제점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K리그는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를 호령하고 있는 리그다. 미국 리그, 멕시코 리그와 비교할 때 한참 뒤처지는 리그가 아니다. K리그 선수들도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K리그의 수준도 낮지 않다. 그렇기에 K리거의 무능력과 수준 저하만으로 이번 대표팀의 졸전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런 졸전이 벌어진 또 다른 이유를 찾아야 한다.
바로 K리거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홍명보 감독의 문제다. K리거들의 수준 이하 경기력보다 K리거들의 가치를 살리지 못한 홍 감독의 문제가 더욱 크다. 홍 감독은 K리거 위주의 국내파 대표팀만 꾸리면 고개를 숙였다. 지난해 7월 동아시안컵도 그랬고, 이번 평가전도 그랬다.
동아시안컵 3경기에서는 1승도 거두지 못했고, 특히 2군급으로 나선 일본에 패배하며 굴욕을 당했다. 2진급 일본 대표팀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미국 전지훈련에서의 3차례 평가전에서도 홍명보호는 1승2패, 1골6실점이라는 굴욕적인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특히 멕시코전 0-4 대패는 국내파 위주의 홍명보호의 한계와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 경기였다.
홍 감독은 K리거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각자 소속팀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K리거들을 불러 모아놓고,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각 선수들의 재능과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K리그 MVP 김신욱을 헤딩 기계로 전락시켰고, 포항 우승의 주역 이명주를 중원의 구멍으로 만들었다. 또 K리거 수비 라인의 조직력은 참담할 정도였다.
이번 평가전에서 만난 미국과 멕시코 역시 모두 국내파 위주의 대표팀이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미국 감독, 미겔 에레라 멕시코 감독 모두 국내파를 소집해 최대한 활용했다. 국내파의 재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또 A매치에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선수들을 출전시켜 실험하는 여유도 보였다. 국내파로 팀 전력의 기본 틀을 단단히 만들었다. 여기에 핵심 해외파가 합류한다면 얼마나 강한 팀으로 거듭나겠는가. 그런데 홍명보호는 그러지 못했다.
미국과 멕시코가 그랬던 것처럼 국내파가 튼튼한 기본을 마련한 자리에 해외파를 합류시켜 더욱 경쟁력 있는 팀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은 국내파가 초토화 됐고, 오직 해외파만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클린스만 감독, 에레라 감독과 달리 홍 감독은 국내파 대표팀으로는 한계를 드러냈다. 기량 발휘를 못한 K리거들도 문제였지만, K리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홍 감독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유럽파가 총동원된 경기에서는 그나마 홍명보호는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월드컵 본선에 나설 베스트 11을 모두 유럽파로 꾸릴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유럽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수십 명이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각 포지션에서 몇 명은 K리거가 들어가야 하고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예비 전력도 갖춰놓아야 한다. 그런데 K리거는 불신의 대상이 됐다. K리거들은 상실감을 느껴야만 했고, 자신감도 떨어졌다.
유럽파가 아무리 높이 날고 있더라도 대표팀의 기본은 자국리그 출신들이 만들어줘야 한다. 수십 명의 해외파가 있지 않은 이상은 자국리그 선수들이 틀을 잡고 있어야 한다. 이런 틀에 유럽파의 가치가 보태져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 대표팀이 더욱 강해지는 방법이다. 홍 감독은 이런 시너지 효과를 그냥 지나쳐버린 것이다.
홍 감독만 만나면 작아지는 K리거들. 일각에서는 자국 프로리그 팀을 지도해보지 못한 자국 대표팀 감독의 경험을 지적하기도 한다. 월드컵 본선 감독 중 외국인 감독이 자국 프로팀을 지도하지 못한 경우는 많지만, 자국 감독이 자국 리그 팀을 지도하지 못하고 대표팀을 지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홍 감독은 K리그 팀을 한 번도 지도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K리그 선수들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홍 감독은 이런 지적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그렇기에 K리그에 대한 불신과 K리거들의 상실감도 결국은 홍 감독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자국 리그가 무너지면 대표팀의 기본이 무너지는 것이다. 자국리그가 없으면 월드컵도 없다. 자국리그가 받쳐주지 않는데 월드컵에서 성공한 나라는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K리거를 들러리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K리거들을 '제대로 활용'하면서 자신감과 신뢰를 높여야 한다.
유럽파가 없으면 힘을 내지 못하는 홍명보호, 국내파들만 모아놓으면 작아지는 홍명보호, 지금까지 상황만 놓고 보면 홍 감독은 반쪽 감독이다. K리거를 활용하지 못하는 반쪽 감독이다. 반쪽짜리 감독으로 계속 남는다면 월드컵 본선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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