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완 무덤' 두산, 왼손 왕국으로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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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관·이현승·함덕주에 장민익 가세…FA 대어 장원준도 합류하나

[김형태기자] 지난 2012년 3월20일 잠실구장. LG 트윈스와 시범경기를 하던 두산 베어스 코칭스태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LG가 1회부터 9회까지 왼손투수만 6명을 기용해 두산 타선을 상대한 것이다.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지만 당시 LG의 '릴레이 좌완 계투 작전'은 적지 않은 화제였다. 경기 후 "우리도 옆구리투수들로만 내세울걸 그랬다"는 당시 푸념이 코치진 사이에서 나올 정도였다.

전통적인 '좌완의 무덤'인 두산 베어스가 일대 변신을 예고하고 있다. 올 시즌 6위로 3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두산이지만 소득이 없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당장 다음시즌 마운드의 주축 역할이 기대되는 왼손 좌원을 대거 발굴한 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수확이었다.

꾸준한 유희관에 이현승 선발 도전

우선 2년 연속 두자릿수 승리를 거둔 유희관이 건재하다. 올 시즌 중반 잠시 부침이 있었지만 후반기부터 기복없는 투구로 더스틴 니퍼트에 이어 두산 마운드의 2인자로 자리를 굳혔다. 무엇보다 로테이션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시즌 30경기에 모두 선발등판한 점이 눈에 띈다. 덕분에 최다이닝 4위(177.1이닝)에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이 부문 1위인 '20승 투수' 앤디 밴헤켄(넥센, 187이닝)과 불과 10이닝 차이다. 밴헤켄이 31경기에 선발등판한 점을 감안할 때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유희관 자신도 "10승이라는 기록보다 내 등판을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는 게 가장 뿌듯하다. 역시 투수는 많은 이닝을 던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부상 없는 투구폼이 장점인 데다 자신감까지 확실하게 얻은 유희관은 내년에도 꾸준한 활약이 기대된다.

유희관과 함께 두산 선발진의 '왼손 콤비'로 벌써부터 주목을 받는 선수가 이현승이다.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의 후유증을 뒤로 하고 올 시즌 두산 불펜의 왼손 셋업맨으로 입지를 굳힌 그는 다음 시즌 선발 도전을 선언한 상태. 두산 내부에서도 이현승이 선발진에 합류할 경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원래 선발투수인 이현승은 히어로즈 시절이던 2009년 13승10패 평균자책점 4.18로 돋보였다.

하지만 두산 이적 후 이후 군입대와 팔꿈치 수술 등이 겹쳐 2012∼2013년 공백이 있었다. 올 시즌 대부분을 불펜에서 활약하며 65경기(55이닝)에 나선 그는 시즌 마지막 등판인 10월16일 잠실 SK전에 선발로 나와 5이닝 6피안타 1실점 호투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현승은 "선발 투수로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열심히 해서 다른 선수들과 경쟁하고 싶다"며 의욕을 나타냈다.

또 다른 왼손투수 함덕주는 두산 불펜의 희망으로 반짝 빛났다. 시즌 중반인 6월20일 1군 콜업된 뒤 날카로운 구위를 앞세워 불펜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 31경기(26.1이닝)에 나서 1승 평균자책점 4.44를 기록했다. 볼넷(12개)이 다소 많았지만 주눅들지 않는 투구로 삼진 23개를 솎아냈다. 지난 겨울 체중을 9㎏ 불리면서 구속이 상승한 결과다. 평소 141㎞ 정도였던 구속이 146㎞까지 찍혔다. 경험이 쌓이면 구위가 더욱 무거워질 것이라는 평가다. "1군에 오래 머물고 싶다"는 소박한 목표를 달성한 그는 내년에도 두산 불펜의 왼손 셋업맨으로 쏠쏠한 활약이 예상된다.

◆'기대주' 함덕주·장민익에 외부 FA까지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투수가 장민익이다. 207㎝ 최장신으로 주목받은 그는 로스터가 확대된 10월 콜업돼 8경기(5.1이닝) 동안 놀라운 잠재력을 보여줬다. 제구에 난조를 보이기도 했지만 최고 150㎞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뿌리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아직은 꾸준히 이닝을 늘리는 게 숙제이지만 조련에 따라서는 '대어'로 성장할 수 있음을 과시했다. 장민익은 "올 시즌 직구와 슬라이더 위주로 던졌는데, 내년을 대비해 떨어지는 변화구도 연마하고 싶다"고 밝혔다.

두산의 기존 좌완 4인방에 의외의 투수가 합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두산은 이번 겨울 FA로 즉시전력감 투수를 영입할 방침이다. 김태형 감독의 적극적인 요청에 따른 것이다. 올 시즌 FA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투수는 3명. 윤성환·안지만(이상 삼성), 장원준(롯데)이다. 김 감독이 "선발도 좋고 불펜요원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가운데 두산이 이들 가운데 한 명을 실제로 영입할지 주목된다.

팀내에서 유일하게 FA 자격을 갖춘 3루수 이원석이 군입대를 선택하면서 돈이 굳은 두산은 외부 FA들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상황. 만약 그 대상이 장원준 정도의 왼손투수라면 두산은 단숨에 '좌완 왕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올 시즌 어수선한 팀내 상황에서도 10승 9패 평균자책점 4.59를 기록한 장원준은 언제든지 리그 톱10에 들만한 성적을 보장해주는 투수다.

'확실한 왼손 투수'는 OB 시절부터 두산의 오랜 한이었다. 지난해 유희관의 등장으로 숙원을 푼 두산은 내친김에 '왼손 투수 왕국'으로 거듭날 희망도 품고 있다. 이를 위해 현역 시절 최고의 왼손투수였던 이상훈 고양 원더스 코치 영입도 결정한 상태다. 이 코치는 2군에서 투수 유망주, 특히 왼손 투수들 성장에 역량을 발휘할 것으로 구단은 기대하고 있다.

조이뉴스24 김형태기자 tam@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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