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수원은 야구 불모지인가.
현대 유니콘스 시절 수원구장(현 kt위즈파크)을 찾은 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성적 좋은 홈팀이 있어도 수원시민들은 좀처럼 야구장을 찾지 않았다. 원래 인천 연고인 현대가 서울로 옮기기 위한 임시 거처로 사용한 곳이어서 팬들의 충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해도 그 정도가 심했다. 필드의 뜨거운 열기와 달리 관중석은 거의 매일 한산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과거 불펜 코치 시절 수원에서 현대와 야구를 하면 참 경기가 빨리 진행됐던 기억이 생생하다. 현대 투수들이 워낙 좋은 데다 우리도 리오스 같은 에이스가 나오면 7회까지 경기가 물흐르듯 흘러갔다"며 "관중석이 워낙 한산해서인지 경기 내용과 달리 박진감이 들지 않았던 것도 한 이유일 것"이라고 회상했다.
일각에선 "수원은 야구와 맞지 않는 곳"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였다. K리그의 명문 수원 삼성 축구단이 일찌감치 터를 잡은 데다 외지 출신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특성을 감안한 말이었다. 지난 2013년 10구단 kt가 수원을 연고로 창단이 결정되자 조용히 제기됐던 우려였다.
그러나 짧지 않은 준비기간을 거쳐 뚜껑을 열자 우려는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항상 조용하고 텅텅 비던 수원구장은 열성팬들이 3월의 쌀쌀한 바람을 뚫고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줄을 서는 kt위즈파크로 변해 있었다.
개장일인 14일 두산과의 시범경기에 무려 2만명의 구름관중이 몰려들더니 15일 경기에도 많은 야구팬이 구장을 찾았다. 수도권 팀들의 공통된 현상인 3루쪽 관중석은 주로 원정팬들이 차지했지만 홈플레이트 뒤와 1루 스탠드, 외야는 kt를 응원하는 홈팬들이 주였다.
이들은 하얀 바탕에 빨간색과 검은색이 곁들여진 홈유니폼의 kt 선수들이 휘두르고 뛸 때마다 열렬한 응원으로 힘을 불어줬다. 수원팬들의 열기는 kt 구단의 예상과 기대를 훨씬 뛰어넘은 것이었다.
전날 개막전 당시 kt는 외야 관중석과 내야 상단 4층 스탠드를 개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개장식 당시 외야에서 폭죽을 터뜨릴 계획이어서 관중의 안전을 고려해 빈 스탠드로 놔두기로 했다. 그 정도로 관중이 많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고려도 밑바탕에 깔렸다.
그러나 이런 구단 방침은 경기 시작 전부터 바꿀 수밖에 없었다. kt 관계자는 "관중이 워낙 많이 오신 것을 보고 계획을 바꿨다. 내야 꼭대기 그랜드스탠드는 물론이고 외야 관중석까지 개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1년간 2군에서 담금질을 한 위즈 선수과 kt 야구에 대한 갈증이 그만큼 대단했다는 하나의 방증이다.
야구에 굶주린 수원팬들은 15일에도 물밀듯이 위즈파크를 찾았다. 이날도 kt는 외야와 내야 상단 스탠드 미개방 방침을 일찌감치 철회했다. 경기 시작 후에도 꾸준히 경기장을 찾아온 팬들을 돌려보낼 수 없어 굳게 잠근 출입문 자물쇠를 풀었다. 이날 관중은 1만5천명으로 집계됐다.
조범현 kt 감독은 "선수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경기에 열중하더라. 관중이 많이 오시니까 선수들도 자연스럽게 의식을 한 것 같다"며 "이런 팽팽한 긴장김이 익숙하지 않은 선수들이니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의 한 관계자는 "예전 수원구장과는 분위기가 무척 다르다. 정규시즌에도 관중이 꽤 들어올 것 같다"며 "시설도 대대적으로 바뀐 데다 홈팬들의 관심도 무척 커서 정규시즌에도 수원의 야구열기가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kt는 홈 개막 2연전서 두산에 내리 패했다. 전날 두산 에이스 장원준 공략에 실패해 3-6으로 패한 뒤 이날은 4-6으로 졌다. 두산 타선의 집중력에 선발 시스코가 5이닝 9피안타 4실점으로 부진한 게 패인이었다. 시스코는 감기 몸살 탓에 당초 이날 선발 등판을 건너뛰려 했지만 본인이 마음을 바꿔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투혼은 좋았지만 직구와 슬라이더 위주의 단조로운 투구패턴이 경기 중반 읽히면서 난타를 당했다.
비록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14∼15일 두산과의 개장 2연전은 수원에 야구의 훈풍이 불기 시작했음을 확인한 시리즈였다. '야구 불모지'에서 수도권 동남부의 새로운 명소로 탈바꿈하기 위한 첫 걸음이 무척 경쾌하다. 수원에 야구의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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