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뢰한' 오승욱 감독, 전도연의 진심을 만나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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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칸 초청 소식에 '감독님 다음 영화 찍겠다'며 격려"

[권혜림기자] 오승욱 감독이 수차례 말했듯, '무뢰한'(감독 오승욱/ 제작 ㈜사나이픽처스)은 제작을 준비했던 수 년의 기간 동안 충무로의 기대작으로 꼽혀온 영화였다. 전작 '킬리만자로'(2000)로 확실한 색깔을 보여줬던 오승욱 감독이 내놓을 회심의 복귀작이었던데다 배우 전도연의 출연 소식으로도 남다른 관심을 모았다.

약 7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무뢰한'은 한국 영화계에 오랜만에 등장한 강렬한 색채의 장르 영화다. 얼핏 낯선 구분으로 다가왔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하드보일드 멜로'라는 장르명에도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진심을 숨긴 형사와 거짓이라도 믿고 싶은 살인자의 여자. 어둡고, 무겁고, 먹먹한 서사가 차분히 스크린을 채운다.

'무뢰한'은 '킬리만자로' 이후 오승욱 감독이 15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연기력으로도, 티켓 파워로도 충무로 톱으로 꼽히는 전도연이 여주인공 김혜경으로 분했다. 화류계에서 흘러 흘러 유흥업소의 '새끼 마담'이 된, 사람을 죽이고 사라진 연인 박준길(박성웅 분)을 기다리는 인물이다.

아슬아슬한 몸짓과 히스테리컬한 눈빛으로, 믿을 곳 하나 없이 불안한 삶을 사는 김혜경은 전도연에게 제 옷을 입은듯 꼭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일각에선 '무뢰한' 속 전도연의 연기를 가리켜 그에게 칸 여우주연상을 안겼던 '밀양'(2007)을 넘어섰다고도 평했다.

오승욱 감독의 눈에 비친 '무뢰한' 현장의 전도연은 빼어난 재능에 더해 주연 배우로서의 책임감과 성실한 태도를 겸비한 배우였다. '밀양'에서 이미 최고의 연기를 펼쳤던 그와 작업하며 오히려 부담감을 느끼진 않았는지 묻는 질문에 오 감독은 "전도연과 촬영을 하며 제가 보기에 '밀양' 속 연기보다도 훌륭한, 최고의 연기라는 생각을 한 순간이 있었다"며 "그 때부턴 누군가 방해만 하지 않으면 최고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회상했다.

"그 때부턴 '내가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역량을 다 못 뽑아내면 어쩌지?'라는 생각은 사라졌어요. '최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민영기(김민재 분)와 룸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 김혜경이 민영기의 허벅지를 만지며 대사를 하는 순간이었는데 그 긴장감이 대단했어요. 그 즈음 전도연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이 최고의 연기인 것 같다. '밀양'에서보다 더 좋은 것 같다'고 말했더니, 전도연 씨가 민망한지 웃으며 '감독님, 술 드셨죠?' 하더라고요. 많이는 안 마셨는데.(웃음)"

오승욱 감독에게 전도연은 우여곡절 많았던 '무뢰한'의 작업을 버티는 가장 큰 에너지이기도 했다. 자신의 촬영분이 없는 날에도 현장을 찾곤 했던 전도연의 열정을 떠올리며 그는 "전도연은 수를 내다보는 타입의 사람은 아니다. 오로지 마음만이 있는 인간형"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진심이 통할 수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전도연은 "우리 영화가 많은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볼만한 영화,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감독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도 했다.

스스로 말하듯, 오승욱 감독은 배우 복이 많은 연출자다. '킬리만자로'에선 안성기와 박신양을, '무뢰한'에선 전도연과 김남길을 만났다. 전도연을 보며 경탄을 내뱉을 때마다, 오 감독의 뇌리엔 종종 15년 전 대배우 안성기와 작업하며 감화됐던 순간이 떠오른다. 오승욱 감독은 "전도연이 주연 배우의 덕목을 갖췄듯 안성기 역시 그랬었다"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본인보다 스태프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못 보는 분이었다"고 돌이켰다.

"안성기 선배의 경우, 피로 범벅이 된 촬영장에서도 한사코 맨 바닥에 앉아있다가 모든 스태프들이 깔개를 깔고 앉은 뒤에야 자신도 깔개 위에 앉곤 했어요. 전도연 씨의 경우 힘든 현장에서도 혼자 외로운 섬을 지키는 사람처럼 늘 긴장을 놓지 않고 있었죠. 두 배우 모두 영화 현장의 모든 것을 볼 줄 안다는 점에선 닮아 있었어요. 도연 씨는 오랜만에 영화 현장에 복귀한 저와 스태프들을 보며 많이 답답했을텐데, 많이 참아주기도 했죠."

강산이 한 번 반은 변했을 15년의 시간 동안, 충무로의 현장도 많이 바뀌었다. 공백을 깨고 현장에 복귀한 오 감독에겐 달라진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오 감독은 "어우, 이게 마지막 영화 같아"라는 푸념을 내뱉었고, 전도연은 그의 한숨 섞인 자조를 듣곤 못내 속상해했다.

"몰랐는데, 그걸 전도연 씨가 옆에서 들었나봐요. 크랭크업을 하고 술을 먹는데, 전도연 씨가 '감독님, 지금도 영화를 다신 안 찍을 거라고 생각해?'라고 묻더라고요. 그 땐 '아직 잘 모르겠다'고 답했죠. 칸국제영화제 초청 소식을 듣고 전도연 씨가 제게 가장 먼저 한 이야기가 그거였어요. '감독님, 다음 영화 찍을 수 있겠다'."

영화는 제67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초청돼 세계 관객을 만났다. 유의미한 성과임에 분명하지만, 오승욱 감독은 인터뷰 내내 겸손했고 조심스러웠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영화를 만들지는 모르겠어요. 이번에는 운이 좋아 전도연과 김남길, 사나이픽쳐스의 한재덕 대표, CGV 아트하우스 이상윤 총괄 사업 담당 같은 좋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어요. 이 운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자신있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어요. 관객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제 이야기에 깊이를 주고,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죠."

한편 '무뢰한'은 지난 5월27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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