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가 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단편 「그림자와 칼」로 아침소설의 문을 연 정찬주 작가가 네 번째 작품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를 선보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호흡이 긴 중편소설입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정찬주 작가가 쓴 「작가메모」로 갈음합니다. [편집자]
불우했던 천재 시인 김시습이 볶아 먹고 쪄서 먹으면서 이가 시원해짐을 느꼈다는 송이버섯이지만 강헌은 왠지 잘 넘어가지 않는다. 대신 솔차를 술처럼 몇 잔을 들이켰더니 알코올 기운이 식도를 타고 넘어온다.
잃어버렸던 아버지를 언제 어떻게 김룡사에서 찾았다는 것일까. 강헌하고는 인간성이 다른 자광스님이다. 자신은 아버지가 지금도 금선대에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찾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광스님의 아버지가 누구였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쉽게 물어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의 아문 상처를 다시 헤집는 결과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 굳이 알려고 하지 말자. 김룡사를 찾아온 동기란 그런 따위를 알려고 온 것이 아니잖은가. 잠자리가 다시 강헌의 팔에 내려앉고 있다. 마치 자광스님의 이야기를 함께 듣겠다는 듯이 내려앉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강헌은 잠자리를 쫓지 않고 오히려 돌보았다. 팔을 움직이지 않고 자광스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법성스님을 뵈었습니까?"
"아니오."
"지나치십니다."
"그럴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출가 전에는 아버지가 아니었습니까?"
"아버지가 먼저 가족의 인연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강 사장마저 가족의 인연을 끊은 것은 아니잖습니까? 내 생각은 그렇습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대단히 부드럽던 자광스님의 태도는 다소 딱딱해지고 있었다. 마치 강헌에게 무슨 배신감을 느낀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강헌도 법성선사에 대해서만은 단호하고 싶었다. 팔에 붙은 잠자리를 일부러 잡아 뜯어내며 강헌은 말했다.
"절대로 찾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김룡사는 왜 왔습니까?"
"어머니를 만나러 왔습니다."
"부전자전입니다. 강 사장 고집도 법성선사 못지않아 보입니다."
허공에는 지는 해와 같이 잠자리 떼가 거짓말처럼 사라져가고 있다. 대신 그 공간은 어스름으로 채워지고 있다. 대신 그 공간은 어스름으로 채워지고 있다. 해가 운달산 저쪽으로 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활엽수림의 단풍잎들이 좀 전의 잠자리떼를 대신하듯 마지막 남은 날빛으로 원색을 토해내고 있다. 울긋불긋한 원색의 단풍이 그 어느 시각보다도 선명하게 보이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날빛을 받는 단풍숲이 갑자기 투명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정도였다.
작가메모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는 십여 년 전에 썼던 작품이다. 어느 해 가을날 김룡사를 다녀온 뒤 그 절의 풍경이 너무 쓸쓸해서 그런 적막한 분위기를 화폭에 담듯이 그려본 작품이다. 지나친 슬픔이나 기쁨은 목을 메이게 한다. 그런데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쓸쓸함도 목을 메이게 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그런 적막 속에서는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데 그곳에 갇힌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잘 견디고 있었다. 식사하는 여러 스님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에게 이 작품을 딱 한 번 보여준 기억이 난다. 한 선생은 그때 '자네도 이제 소설 귀신이 됐구먼.'하고 웃으셨던 것 같다. 나는 이 작품을 일기 쓰듯 썼기 때문에 완성도나 작품성 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정작 내가 쓰고 싶은 작품은 사사로운 경험적(불교적) 소재를 차용한다 해도 문학적 보편성을 담아내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사숙한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나 이노우에 야스시의 「후다라쿠 항해기」 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작가로서 도달해 보고 싶은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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