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의 도보기행]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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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네티 산악마을, 메스티아

[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⑩ 편에서 이어집니다

메스티아 스반타워. [사진=박성기 작가]
메스티아 스반타워. [사진=박성기 작가]

산이 지켜낸 사람들

스바네티(Svaneti)는 남쪽을 산이 막았다. 그 안쪽에 메스티아(Mestia)가 있다. 북쪽으로는 오천 미터를 넘나드는 봉우리들이 늘어섰다. 그 너머가 러시아다. 걸어서 넘는 길이 몇 있었으나 눈이 덮이면 사람이 갈 수 없었다.

메스티아 스반타워. [사진=박성기 작가]
스바네티 지역으로 가는 트레킹 표지판 [사진=박성기 작가]

여기 사람들을 스반(Svan)이라 부른다. 스반어는 조지아어와 뿌리가 같으나 서로 통하지 않는다. 공통의 조상 언어에서 일찍 갈라진 언어가 산악의 고립 속에서 살아남았다.

몽골은 조지아를 휩쓸었으나 스바네티까지 오지 못했다. 스바네티의 공동체들은 봉건 영주를 두지 않았다. 이곳을 '자유 스바네티'라 불렀다. 러시아 제국의 지배는 19세기 중반에야 시작됐다.

지금 같은 포장도로와 교통망이 갖춰진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겨울이면 몇 달씩 길이 막혔다. 오랫동안 산에 막혀 살아온 스바네티가 이제 사람을 불러들인다.

성당과 다리

메스티아 스반타워. [사진=박성기 작가]
메스티아 구세주 부활 대성당(Matskhovris Aghdgomis Sakatedro Tadzari). [사진=박성기 작가]

가벼운 차림으로 숙소를 나선다. 바로 앞 도로변 언덕 위에 메스티아 구세주 부활 대성당(Matskhovris Aghdgomis Sakatedro Tadzari)이 보인다. 돌을 반듯하게 다듬어 쌓았고 벽이 희다. 팔각 드럼 위로 구릿빛 원뿔 지붕이 올라가고 그 꼭대기에 십자가가 솟아 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 종탑이 따로 서 있다.

메스티아 스반타워. [사진=박성기 작가]
거칠게 흘러가는 물흐라(Mulkhra)강. [사진=박성기 작가]

성당을 지나 다리를 건넌다. 다리 밑으로 물흐라(Mulkhra)강이 거세게 흐른다. 트비베리(Tviberi) 빙하에서 내려온 물이다. 난간에 손을 얹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물의 흐름이 아찔하고, 물빛이 뿌옇다. 한여름인데도 팔이 시리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꺾는다. 유리로 지은 건물 둘이 나란히 서 있다. 뒤쪽 것이 경찰서다. 위로 길게 솟은 모양이 돌탑을 닮았다.

세티 광장

메스티아 스반타워. [사진=박성기 작가]
세티광장에 있는 타마르 여왕의 기마상. [사진=박성기 작가]

세티(Seti)는 원래 이 자리에 있던 마을 이름이다. 이웃한 세 마을과 합쳐지면서 메스티아가 되었고, 이름만 광장에 남았다.

햇볕이 뜨거워지며 광장의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능선을 덮었던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파랗다. 습기가 없어 그늘에 들면 시원하다. 사람들이 의자에 삼삼오오 앉아 햇살을 피한다. 얼굴이 하나같이 붉다. 모자 자국이 남아 이마 위쪽만 하얀 사람이 있고, 한 남자는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있다. 의자 밑에 흙 묻은 등산화가 놓여 있다.

돌로 지은 삼 층 건물 앞에 흰 승합차 여러 대가 앞머리를 이쪽으로 두고 섰다. 건물은 모서리를 각지게 올려 조지아어로 코시키라 불리는 스반 타워(Svan Tower) 모양을 냈다. 벽에 붉은 글씨로 버스터미널이라 쓰여 있고, 그 양옆에 목록이 붙었다. 우쉬굴리(Ushguli), 코룰디(Koruldi) 호수, 찰라디(Chalaadi) 빙하 등 이곳에서 갈 수 있는 곳이 저 목록에 다 들어 있다. 광장 건너편 건물 이 층 발코니에는 조지아 국기가 보이고 처마를 따라 전구 줄이 늘어졌다. 세티 호텔이다. 호텔도 식당도 버스회사도 세티다. 사라진 마을 이름이 간판으로 남았다.세티광장 한쪽에 있는 타마르(Tamar) 여왕의 기마상은 말부터 모양이 낯설다.

몸통이 둥글고 육중하며 다리가 짧다. 둥근 몸 전체에 무늬가 새겨져 있다. 타마르가 다스리던 시절, 이 골짜기까지 여왕의 화가가 와서 벽에 그림을 그렸다 한다.

산악마라톤

메스티아 스반타워. [사진=박성기 작가]
스바네티 지역의 산악 지대를 달리는 트레일 레이스 [사진=박성기 작가]

타마르 여왕 기마상 앞쪽으로 세로로 긴 깃발들이 줄지어 섰고 그 앞으로 철제 펜스가 놓여 있다. 펜스 안에는 무대와 의자가 보인다. 마침 스바네티 지역의 산악 지대를 달리는 트레일 레이스가 열리는 중이다. 이틀 동안 다섯 부문이 치러진다. 짧은 구간은 6킬로미터, 가장 긴 구간은 105킬로미터다. 출발도 결승도 이 광장이다. 마지막 날 오후 다섯 시부터는 축제를 연다고 한다. 주황색 러닝셔츠를 입은 남자가 앞을 지나간다. 종아리가 굵고 걸음이 짧다. 방금 산에서 내려온 모양이다. 앞으로 걸을 트레일 코스에서 참가자들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 '데데'

메스티아 스반타워. [사진=박성기 작가]
타마르 메페거리. [사진=박성기 작가]

타마르 메페 거리(Tamar Mepe St.)를 따라 걷는다. 길 양쪽으로 간판이 촘촘하다. 붉은 바탕에 흰 조지아 문자, 그 아래 영어. 기념품 가게 앞이 붐빈다. 길 한쪽 벽에 붉은 글씨로 쓴 시네마 데데가 보인다. 포스터 속에 거친 산악지대의 남자와 여자, 총을 든 사람이 있다.

데데는 어머니라는 뜻이다. 1992년의 스바네티, 정해진 혼처를 거부한 여자의 이야기다. 우리 옛 풍속의 보쌈과 닮은 관습이 이곳에서 오래 이어졌다. 혼사는 여자가 아니라 두 집안이 정했다. 우쉬굴리 출신의 감독 마리암 하치바니가 할머니에게 전해들은 집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메스티아 스반타워. [사진=박성기 작가]
영화 데데의 포스터. [사진=박성기 작가]

여기서는 하루 다섯 번, 같은 영화만 상영한다. 포스터 아래 자막 언어에 영어와 러시아어, 한국어가 적혀 있다. 한국인 여행자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라 나도 여기에 일조를 한 모양이다.

스반의 옛집 마추브

데데 극장 앞에서 방향을 바꾼다. 대로 옆 골목으로 들어서면 중심가의 소음이 어느 순간 잦아든다. 담이 이어진다. 강에서 주워 온 둥근 돌로 쌓았다고 한다. 반듯한 데가 한 군데도 없는데 무너지지 않는다. 담 너머로 스반 타워가 솟아 있다. 그 뒤 산은 구름이 반쯤 가린다. 내려오던 조지아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무슨 말을 하는데 알아듣지 못하겠다. 눈인사를 건네고 다시 걷는다.

메스티아 스반타워. [사진=박성기 작가]
니구리아니 스반타워 [사진=박성기 작가]

안내판에 니구리안 타워 마추브(Nigurian Tower, Machub)라고 적혀있다. 니구리아니 가문의 탑이다.

마추브는 스반의 전통가옥이다. 기둥과 널로 칸을 지른 큰 방 하나. 겨울이면 가족과 가축이 그 안에서 함께 지냈다. 짐승의 몸에서 나는 열이 널 사이로 올라와 위층을 데웠다. 여름이면 사람만 위층 다르바지(Darbazi)로 올라간다.

메스티아 스반타워. [사진=박성기 작가]
니구리아니 스반타워 내부. [사진=박성기 작가]

메스티아에서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탑에는 대부분 조지아 국기가 걸려 있다. 이곳은 관람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다. 열려있는 스반 타워에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붙들린 일행이 있었다. 현금이 없는데 말이 안 통해 한참 동안 실랑이를 했다고 한다. 그때 당황하던 얼굴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골목에서 나오니 소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걸어온다. 몸이 갈색과 흰색으로 나뉘고 뿔이 짧다. 그 뒤에 오른손에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가 따라온다. 소는 서두르지 않고 할머니도 재촉하지 않는다. 나도 그 뒤를 천천히 따라 걷는다.

메스티아 스반타워. [사진=박성기 작가]
소와 할머니. [사진=박성기 작가]

철교와 쐐기풀

이제 숙소로 방향을 잡는다. 메스티아찰라(Mestiachala) 강을 따라 내려간다. 이백여 미터 내려가면 보행 철교가 나온다. 사람 둘이 겨우 비켜갈 폭의 다리에 오른다. 발을 디딜 때마다 철판이 울린다. 난간을 붙잡고 건넌다.

메스티아 스반타워. [사진=박성기 작가]
메스티아찰라강과 철교(좌측) [사진=박성기 작가]

강길을 따라 걷다 무심코 길가의 풀을 건드린다. 잠깐 스친 것뿐인데 견딜 수 없이 쓰라리다. 손으로 문지르니 더 화끈거린다. 조지아어로는 친차리, 스반어로는 메르헬이라 부르는 서양 쐐기풀이다.

더 내려가면 메스티아찰라와 물흐라가 만난다. 회백색 물과 회백색 물이 섞인다. 경계가 잠깐 보이다 지워진다. 메스티아로 들어올 때 거슬러 올라온 강이 여기에서 흘러가는 강이다.

메스티아 스반타워. [사진=박성기 작가]
해발 4,858m의 테트눌디(Tetnuldi). [사진=박성기 작가]

숙소에 다가설 때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멀리 두 산 사이로 하얀 봉우리 하나가 솟아 있다. 해발 4,858m의 테트눌디(Tetnuldi)다. 눈이 덮인 산허리에는 구름이 걸려 있다. 산은 아직 밝은데 마을은 벌써 어둡다.

내일은 코룰디 호수로 간다. 우슈바(Ushba)의 두 봉우리가 물에 그대로 비친다고 한다. 그것을 보러 가려니 마음이 설렌다.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⑫ 편으로 이어집니다

메스티아 스반타워. [사진=박성기 작가]
박성기 여행가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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