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런런은 '약속의 땅'이었다. 한국은 2012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로 종합 5위를 차지했다.
당초 한국 선수단의 목표는 10-10(금메달 10개, 종합순위 10위 이상)이었는데 이를 가볍게 초과했다. 금12, 은10, 동11개로 종합순위 4위를 차지한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은 2번째, 역대 원정 올림픽 사상 최고 성적이었다. 금메달 수만 따지면 4년 전 베이징 올림픽과 같은 역대 최다 타이기록이다. 베이징 올림픽 한국은 종합순위 7위를 나타냈다.
7월27일 개막한 런던올림픽은 한국에 의미가 남다른 대회였다. 1945년 대한민국 독립 후 처음 출전한 하계 올림픽이 바로 1948년 열린 런던 대회였다. 64년 만에 다시 런던을 찾은 한국 선수단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나타냈다.
대회 첫날 사격 남자 공기권총 10m에서 진종오가 첫 금메달을 따낸 것을 시작으로 각 종목에서 메달이 쏟아졌다. 양궁 여자 단체전과 유도의 김재범(81㎏), 송대남(90㎏)이 줄줄이 금빛 사냥에 성공했다.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선 한국의 올림픽 통산 100번째 금메달을 따내 굵직한 이정표를 세우기도 했다.
사격 여자 권총(25m)에선 김장미,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선 김지연이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메달밭' 양궁에서도 오진혁과 기보배가 남녀 개인전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체조의 양학선,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66㎏)의 김현우도 금메달 행진에 가세했다. 남자 권총 50m에서도 금메달을 따낸 진종오는 대회 2관왕의 영광을 누렸다. 태권도에선 황경선이 한국에 유일한 금메달을 선사했다. 남자 축구에선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획득하는 감격을 누리기도 했다.
영광 뒤에는 그늘도 있었다. 기본 종목이자 가장 많은 금메달이 걸려 있는 육상에선 메달은 고사하고, 결승에 진출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가장 큰 기대를 모은 마라톤에서도 남자부 강세종이 32위에 오른 게 최고 성적이었다. 육상에서 세계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전통적인 효자 종목들도 기대에는 못 미쳤다. 특히 종주국의 자부심을 안고 있는 태권도는 금메달과 은메달 각각 1개씩에 그쳤다. 새로 도입된 전자호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신흥 강호들의 성장세에도 밀렸다. 기대를 모은 배드민턴은 '져주기 파문'에 휘말리는 난감한 상황 속에 노골드의 수모를 당했다.
수영의 박태환, 역도의 장미란 등 종목 최고 스타의 후계자 부재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박태환과 장미란은 개인적인 역량으로 세계 정상까지 올랐지만 뒤를 받쳐줄 선수가 전무하다. 이들이 은퇴할 경우 뚜렷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런던대회의 성과는 결코 적지 않다. 국민들은 선수단의 연이은 승전보에 연신 함박웃음을 지었다. 펜싱의 신아람이 잃어버린 1초에 울고, 축구의 박종우가 독도 세리머니로 징계를 받았지만 경기 침체로 신음하던 국민들은 런던 올림픽 기간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저런 수치보다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올림픽을 통해 우리 모두 하나가 됐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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