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숙기자] 조웅천 SK 투수코치가 절대 지우지 않는 휴대전화 동영상이 있다. 직접 촬영한 수십 명 투수의 투구 영상과 2011년 '그날'의 기억이다.
2011년 10월 15일 인천 문학구장. 롯데와의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한창 연습 중인 SK 선수단의 영상이었다. 조 코치가 덕아웃에서 촬영한 영상 속에는 빗소리가 선명했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데도 선수들은 방망이 돌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김)연훈아, 빨리 다음 타자들 나오라고 해. 치고 가자!" 김강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만수 감독은 미디어데이를 위해 이미 부산 원정지로 출발한 상황.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선수들은 훈련을 이어갔다. 결국 이날 SK 선수들은 빗속 훈련을 모두 마치고 나서야 부산으로 이동했다.
그 다음날인 16일 플레이오프 1차전 승자는 SK였다. 연장 접전 끝에 10회초 정상호가 결승 홈런을 터뜨렸다. 그리고 SK는 롯데를 꺾고 한국시리즈에 올라 준우승을 거뒀다.
조 코치는 "이게 SK의 힘"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면 대부분 실내 훈련을 한다. 당시 코치들도 선수들에게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이날은 선수들이 스스로 훈련을 강행하더라. 기특하고 뿌듯해 동영상으로 찍어놨다"고 그 당시를 돌아봤다.
조 코치는 SK의 살아있는 역사다. 1989년 태평양에 입단해 현대를 거쳐 2001년 SK 유니폼을 입었다. 성실함의 대명사였던 조 코치는 1996년부터 2008년까지 13년 연속 5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그는 통산 64승 54패 98세이브 89홀드의 성적을 남기고 은퇴해 SK 투수코치로 새출발을 했다.
조 코치는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선수들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사상 첫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일군 SK 마운드의 힘은 무엇일까. 조 코치는 "선발과 중간, 마무리의 역할 분담이 확실하다. 투수가 최소한의 실점으로 막으면 야수들이 쫓아갈 수 있다는 믿음도 확고하다. 또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없다. 긴장감을 갖고 열심히 뛰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SK 창단 멤버인 만큼 팀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조 코치는 지도자로, 때론 선배로서 진심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김광현, 엄정욱 등이 재활 훈련 때문에 중국 2군 캠프로 이동해 마운드가 허전하지만, 조 코치는 이럴 때일수록 선수단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늘 '어떻게 하면 후배들이 더 잘 될까. 문제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고민한다. 내가 느낀 점을 후배들에게 전하면 다들 잘 받아준다. 그런 모습에서 보람을 얻는다. 선배로서, 코치로서 할 도리를 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최근 여건욱, 문승원 등 신예들을 선발로 기용하며 세대교체를 알린 SK 마운드. 조 코치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진짜 선수"라며 "SK의 끈끈한 투지를 잊지 않는다면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도 문제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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