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같이 하시죠."
강한 눈발이 날리던 14일 오후 서울 중계본동의 104마을, 여기저기서 '악' 소리가 들렸다. 등에 연탄을 이고 또는 손수레에 실어 비탈길을 오르 내리는 대한축구협회 임직원과 대표 선수들의 비명(?)이었다.
기자를 본 지소연(첼시 레이디스)은 "아 얄미워요. 어서 나르세요"라며 채근했다. 104마을은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대표적인 달동네다. 축구협회는 밥상공동체 연탄 은행과 함께 지난 2013년 12월을 시작으로 매년 104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는 연탄 2만장을 기부했다. 금액으로만 따지면 1천만원 어치다. 3천장을 이날 직접 나르고 나머지는 연탄 은행을 통해 필요한 곳에 배분된다.
육군 소장 출신 유대우 부회장은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연탄 배달 시간을 측정하겠다며 곽태휘(FC서울),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김승규(빗셀 고베), 권창훈(수원 삼성), 이근호(강원FC) 등 힘이 있는 장정들을 압박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지소연은 동갑내기 김승규에게 "하나 더 올려"라며 장난을 쳤다.
여자 축구 WK리그 대표 '귀염둥이' 이민아(인천 현대제철)는 인기 만점이었다. 이민아의 얼굴에는 자의가 아닌 타의로 연탄이 묻었다. 지소연이 그의 얼굴에 인정사정 없이 연탄을 발랐다. 알아보기 힘든 얼굴이 되자 주위에서 웃음이 터졌다. 권창훈은 손수레의 기사가 됐다. 오르막과 내리막에서 알아서 속도를 조절하는 공격형 미드필더 특유의 완급 조절을 과시했다.
유 부회장은 "작년보다는 훨씬 속도감이 있다"라며 칭찬했다. 지난해 부상을 안고 왔던 이정협(부산 아이파크), 황의조(성남FC) 등에 비해 올해 온 남자 대표 5인방이 전력적으로 훨씬 괜찮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최근 강원FC로 이적한 이근호는 곽태휘, 하석주 아주대학교 감독과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파주 NFC)에서 지도자 보수 교육을 받던 중에 봉사활동을 왔다. 이근호는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라며 달동네에서의 봉사가 의미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곽태휘는 "C급 라이선스 교육을 받고 있는데 쉴 틈이 없다. 교육이 끝나면 나머지 공부도 해야 한다. 봉사활동에 나와 있는 것 자체는 좋은데 빨리 교육이 끝나서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이지만 일부에선 작전 회의(?)도 있었다. 차두리 전력분석관은 슈틸리케 감독과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2017년에 남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위한 논의였다. 윤덕여 여자 축구대표팀 감독도 마찬가지, 2017 동아시안컵 본선과 2018 아시안컵 예선이 기다리고 있어서 임선주(현대제철) 등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2016년을 정리하는 의미도 컸다. 올해 축구계는 많은 악재로 진통을 겪었다. A대표팀의 월드컵 최종예선 부진부터 K리그 전북 현대의 심판 매수 파문에 전직 심판위원장들의 금품 수수 수사 등 많은 일이 있었다. 상처가 깊어 쉽게 아물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정몽규 회장은 "3년 전에도 이곳에서 봉사 활동을 진행했는데 (올해와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눈이 왔었다. 분위기가 더 좋아진 것 같다"면서 "한국 축구가 2016년에는 공과가 있는데 내년에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힘찬 새 출발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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